최재훈
서스테인
2021.11.4.
제목을 읽고 뜨끔했다. 내 혼잣말을 텍스트화 한줄 알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치는가.
책은 이런 현상을 가진 사람들을 HSP라고 규정지었다. HSP는 최근에 Threads에서 많이 접한 단어였다. HSP는 매우 예민한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의 약어인데 이젠 MBTI가 가고 HSP시대가 오는 것이냐라는 글이었다.
나는 사실 내가 한번도 예민하다고 생각해 보질 못했다. 물론 어릴 때는 예민했었던 것 같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민하다니..?
보통 예민하면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는 사람들 아닌가? 감정기복이 심해서 옆에 사람 눈치 주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를 고생시키면 고생시켰지, 남을 괴롭게 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이 예민한 사람을 다루는 내용이기 때문에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그런 나의 생각을 프롤로그에서부터 정확하게 맞추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매우 예민한 사람들(HSP, Highly Sensitive Person)이 자신의 성격을 오해하기 쉬운 이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평소 보이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민함’이라는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날카로운 반응과 신경질적인 행동들, 호불호에 대한 강한 표현, 잦은 짜증 등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성격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행동 패턴을 보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늘 상대에게 맞춰주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며,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사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며, 언제나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살펴 모두를 편하게 해주려 애쓰는 사람들이죠.”
“실제 성격과 보이는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그저 무던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누구보다도 예민한 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둔감한 사람으로 대하곤 합니다. 이런 일상이 계속되면 본인조차도 자신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어려워지고, 그 괴리감으로 남들보다 몇 배는 더한 감정 소모와 번아웃을 겪게 됩니다.”
프롤로그를 보면 여기서 말하는 예민한 사람은 결국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고 기를 쓰고 상대를 맞춰주고 노력하다 결국 자신이 곪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예민한 사람인지 알 수 있는 테스트는 아래와 같다.
1. 나는 주위에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인식하는 것 같다.
2.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
3. 통증에 매우 민감하다.
4.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5. 카페인에 특히 민감하다.
6. 밝은 빛, 강한 냄새,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피곤해진다.
7. 풍요롭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지니고 있다.
8. 큰 소리에 불편해진다.
9. 미술이나 음악에 깊이 감동한다.
10. 양심적이다.
11. 깜짝깜짝 놀란다.
12.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당황한다.
13. 사람들이 불편해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지 안다.
14.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15. 실수를 저지르거나 뭔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6. 폭력적인 영화와 TV 장면을 애써 피한다.
17.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긴장한다.
18. 배가 아주 고프면 강한 내부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의 집중이 안 되고 기분 또한 저하된다.
19. 생활의 변화에 의해 동요된다.
20. 섬세하고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즐긴다.
21. 내 생활을 정돈해서 소란스럽거나 당황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22. 경쟁해야 한다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불안하거나 소심해져 평소보다 훨씬 못한다.
23. 어렸을 때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내가 민감하거나 숫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렇다가 13개 이상이면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나는 12개가 나왔다. 매우까진 아니고..경계성 HSP인가?
차라리 13개 이상이었으면 아 내가 HSP인가봐! 하고 읽었을텐데 12개라는 애매한 성적표에 고개가 갸웃거렸다.
이런 나의 궁금증은 작가님이 서술한 HSP와 유사 예민자와의 차이에서 조금 해소되었다.
1. HSP의 경우 타고난 예민함이지만, 유사 예민자의 경우엔 결과적 예민함에 가깝다.
2. 완벽주의자는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3. 고 신경성의 경우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감지하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조금만 불편해도 뇌가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인식하면서 스트레스 반응이 확 하고 터져 나온다. 그들이 느끼는 불쾌함은 양의 문제이지 HSP가 가지는 질의 문제가 아니라 HSP들을 가장 괴롭히는 초감정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4. 엠패스들은 타인의 감정까지 마치 내 것처럼 강렬하게 느낀다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타인과의 연결성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 타인의 고통과 스트레스까지 결국에는 내 몫이 된다.
여기서 4번의 경우 왠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타인의 감정에 매몰되어 나까지 힘들어 지는 경우가 많았는데...그걸 엠패스라고 부른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짜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면, HSP는 그 부정적 감정이 전이되어 자신도 잔뜩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상태가 되는데요. 이렇게 감정만 전이된 상태에서는 전적으로 자신의 기준에서 ‘별것도 아닌 일로 왜 저래?’, ‘진짜 이해 안 되네’와 같은 주관적 평가, 즉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기가 쉬워집니다. 반면 엠패스들은 상대방이 짜증을 느끼게 된 상황적 맥락까지도 역지사지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 나 같아도 짜증이 날 것 같아’와 같은 대상 중심적 사고와 소통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감정의 영역만 놓고 보자면 엠패스들은 초감정에 초공감까지 확장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HSP보다 더 고차원적인 면모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시를 보니 더욱더 내가 엠패스 성향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대상을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무심하다고 할 정도로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리송하다.
HSP의 또하나의 큰 차이는 초예술성, 심미안 영역이 다른 유사 예민자들보다 훨씬 뛰어 나다는 것이다. 미적 감각이라...이것도 내가 아예 없다고 할수도 없고, 있다고 하기엔 미미한데..?
엠페스는 또 무엇인지 궁금해 아래의 엠페스 테스트도 한번 해보았다.
해보고 나니 엠페스는 왠지...더 아닌거 같은데 나...
뭐 사람의 기질이란게 이분법으로 기다 아니다 나누어 질 순 없지 않는가. 분명 나도 HSP와 엠페스 사이 그 어딘가에 있겠지... 제시해주는 방법중에서 내게 유효할 것 같은 것들을 몇가지 취하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은 HSP가 가진 심미안 특성을 살려, HSP의 에너지 충전방식으로 좋아하는 것과 함께 하는 힐링을 권하고 있다. 자신의 심미안을 충족시키는 요소들을 활용한 취미생활과 루틴을 가지면 정신건강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추천한다.
예민한 사람들에게 취미생활이란 그런 겁니다. 혼탁해진 흙탕물에 깨끗한 물을 들이붓는 것. 온종일 시달린 나를 급속 충전으로 되살아나게 만드는 것. 저 같은 경우에는 소설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쓸 때 영감을 받고 내면의 울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웃고, 울고, 감탄하고 탄식하면서 혼탁해진 내면에 깨끗한 물을 다시 채워 넣습니다.
그밖에 저자가 권하는 다양한 마음가짐과 방식이 있는데, 이 중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방법들을 몇가지 소개한다.
1. (외향적 HSP일 경우) 질 높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되, 주변환경과 인간관계를 항상 정리정돈하라.
관계는 상호작용이므로,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상대방이 엇나가버리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통제 영역을 벗어난 관계는 내 삶에서 덜어내고,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한 다른 경험들에 비중을 싣는 게 좋습니다. 문화, 예술 등의 취미생활을 누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불필요한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철저하게 차단하는 거죠.
2. 나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자비롭게 살펴라.
자기 자비심(self-compassion)은 수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 분야의 선구적인 심리학자 중 하나인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가 설명하는 자기 자비심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 자신에게 따뜻하고, 2. 실패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인류 공통의 경험임을 깨달으며,
3. 감정에 과몰입하지 말고,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
즉 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가진 측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는 거죠.
3. 이 감정 역시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고 흘려보내라
지금 나를 사로잡은 이 감정이 비록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거대해 보여도 절대로 그게 전부일 순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압도되어 그 감정이 더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다른 사람이라면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고 넘어갈 법한 일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즉 나의 과도한 감각 때문에 감정 또한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괴로움보다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복리스트를 실천해보라
행복 리스트를 작성해보고, 아무리 힘들고 바쁘더라도 잠깐씩 짬을 내서 행복한 시간을 즐겨 보세요. 에너지를 충전하고, 에너지를 쓰고, 또 에너지를 채워 나가야 감정 조절 실패로 인한 악순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5. 나 자신의 감정을 3인칭으로 이해하고 달래주자.
나 자신의 감정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바라봄으로써 나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나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명자’라는 객체로 대우하는 것이죠. 이때 효과적인 방법이 ‘혼잣말하기’입니다.
6. 혹독한 자기 평가에서 벗어나 긴장을 완화시켜보자.
예민한 사람들이 평소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이유는 뇌가 별일도 아닌데 사사건건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근육을 긴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즉 위기 감지에 대한 역치가 낮은 것이죠. 스트레스 감각도 결국에는 뇌에서 주관하는 전기적 신호로 이루어지므로 우리가 자력으로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다면 뇌에서 전기 신호를 스트레스가 아닌 ‘안정’이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됩니다. 방법은 많습니다. 유산소 운동, 명상, 요가, 스트레칭, 심호흡, 반신욕, 바른 자세 등. 주기적으로 릴렉스하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루틴을 만들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면서 예민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자신에게 맞는 나만의 근육이완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 고독한 세상 내가 나를 돌보고 보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HSP에 해당된다면, 책을 읽고 한번씩 마음을 다잡으며 실천에 옮기면 좋을 것 같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67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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